봄 날씨가 좋아 어디라도 놀러 가고 싶은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다시 연장되었네요. 코로나 19 때문에 일상생활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모든 분이 힘드시겠지만 이 시기를 잘 극복하길 응원합니다.
저번 주에는 잠실 5단지에서 지인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요. 벚꽃이 너무 예쁘던 게 생각나서 일찍 도착해 단지 내 산책을 하며 온몸으로 봄을 느껴봤습니다. 단지가 워낙 크다 보니 안에만 돌아다녀도 산책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죠. 들려본 김에 잠실5단지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잠실5단지의 위치입니다.
잠실5단지의 위치나 입지적 장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잠실역 사거리와 한강을 마주하고 있는 5단지는 1978년에 입주했습니다. 전체면적은 353,987,8㎡이며 이중 대지면적은 295,184.3㎡입니다. 토지 등 소유자 수는 4088명이고 총 5950세대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단지 내 오래된 상가에는 기본적인 편의 시설도 있지만 초등학교나 우체국, 주민센터, 치안센터, 성당, 교회 등 웬만한 동네에도 한군데 몰려있지 않은 시설들이 모두 들어서 있습니다. 그만큼 넓으니 가능한 것이겠죠.
다만 조합설립 후 서울시와의 갈등으로 재건축사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구역소개나 주변 이야기보다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갈등 내용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잠실5단지의 용도지역은 제3종 주거지역입니다. 그러나 구역 내 일부가 2017년 서울시로부터 광역중심지역으로 인정받아 준주거지역으로 종 상향되면서 50층으로 재건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합원으로서는 큰 이득인 것이죠.
다만 서울시는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채택된 설계안으로 적용할 것을 조건으로 했습니다. 국제설계공모의 비용도 조합에서 지불하고 진행은 서울시가 대행하는 것으로 말이죠. 대신 재건축 인허가와 관련하여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약속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말한 조건대로 하면 사업 빨리 진행하게 해줄게." 이겁니다.
그런데 국제설계공모 이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2018년 3월 국내 유명한 건축가인 조성룡 씨가 공모에 당선되었는데 당시 서울시는 조합원에게 응모 번호만 공개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설계안이 당선되었는지 알리지 않은 채 당선 사실을 건축가에게만 알렸다고 합니다. 조합원에게는 약 한 달 반이 지난 후에야 조감도와 설계도를 전달했고요.
그러면서 설계안에 대한 논란도 생기게 됩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설계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조합원도 있었는데 저는 이런 불만이 커진 이유로 조성룡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설명할 공청회나 설명회 같은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은 서울시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렇게 유명한 건축가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면 조합원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을 텐데 설명회조차 없었다니 매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서울시에 대행을 위임했다 하더라도 조합원은 사업의 주체이며 해당 공모에 36억 원이나 지불해야 하는 대형 이벤트인데 직접적인 참여나 의견청취 없이 공모가 진행되었다면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 분위기에 역행하는 일 아닐까요.
더 큰 갈등은 지금부터 입니다. 서울시에서 국제설계공모 이후 약속했던 적극적인 행정지원의 태도를 바꾼 것인데요. 공모 이후 빠르게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감이 컸을 조합원에게는 아마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을 겁니다.
서울시의 입장이 번복된 이유는 잠실5단지나 압구정 현대와 같은 대형 재건축 단지의 개발은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라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 특성상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상승기일 때 가능하며 해당 구역의 가격 상승도 동반되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가격상승을 부채질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거기다 재건축 단지 중 가장 Hot 하다는 압구정 현대, 대치동 은마, 잠실 주공5단지 같은 강남권 대형 개발사업들이 진행된다면 주변뿐 아니라 서울 전역에 미칠 여파가 클 것이 뻔하므로 정부의 부동산정책 노선과 결이 같은 박원순 시장으로서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잠실5단지 조합원으로서는 서울시의 약속을 믿고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 큰돈을 내가며 국제설계공모까지 했는데 이렇게 입장을 바꾸면 얼마나 속이 타겠습니까. 이 같은 결정 역시 소통은 부족했던 것 같더군요.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애초에 50층 높이의 건축을 위해 종 상향을 원했던 것은 조합원이었고 이를 위해 기부채납이나 임대세대, 국제설계공모 등 서울시의 까다로운 조건을 받아들인 것도 조합원의 결정이었습니다. 아마 주공1단지나 2단지에서 재건축된 엘스나 리센츠처럼 무난한 아파트로 추진했다면 지금의 갈등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갈등을 떠나서 잠실 주공5단지를 평범한 대단지 아파트로 만드는 건 서울시나 조합원에게나 심지어 아무런 관련 없는 제가 봐도 너무x100 아까운 입지로 보이기는 합니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부동산시장의 가격 안정을 이유로 행정절차를 미루는 것과 조합원의 사유재산 침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옳고 그름을 떠나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면 결국 본질은 흐려지고 얼룩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입지가 좋은 정비구역은 사업성이 기본적으로 받쳐주니 순탄할 것 같지만 이런저런 정비구역을 보면서 느낀 것은 오히려 좋은 입지일수록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고 어려움도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지가 좋으면 좋을수록 말이죠.
잠실 주공5단지는 대한민국에서 한 손에 꼽는 재건축 구역입니다. 벌써 43년 차니 당장 내일 사업이 진행돼도 이상하지 않을 곳인데 아직은 답답한 상황입니다. 하루빨리 갈등이 해소되어 잠실뿐 아니라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변하길 기대합니다.
오늘도 사진 몇 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런데 단지 내 벚꽃 나무는 너무 아깝네요. 다시 옮겨 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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